스스로 삶의 순서와 가치를 찾는 학교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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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이야기]

스스로 삶의 순서와 가치를 찾는 학교

거꾸로캠퍼스의 이성원 대표를 만났습니다. 교직에 발을 들인지 25년째 되던 2015년 어느 날 거꾸로캠퍼스에 합류한 이성원 대표는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에코’라고 불립니다. 그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연결 통로이자 늘 모두에게 열려있는 학교를 고민하는 리더입니다. 이성원 대표는 지난 3년 간 헤드티처로 근무하다 2020년, 올해부터 거꾸로캠퍼스의 대표가 됐습니다. 내년이면 ‘선생님’으로 불린지 30년이 되는 이성원 대표에게 그가 그리는 거꾸로캠퍼스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이성원(에코)ㅣ대표


거꾸로캠퍼스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했습니다. 어릴 적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학습 방법에서 나아진 것이 없는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현실에 잘 적응하면서 지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교육 방법을 바꿔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정해진 수순대로 승진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제서야 학생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정한대로, 방향도 없이 가는 건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죠. 수업이 바뀌면 다음 세대는 진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저 조차도 잊고 있던 믿음이 다시 굳건해졌습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거꾸로 교실을 접하게 됐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니 결국 교육은 학습자에게 숨어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잠재력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꾸로캠퍼스는 학습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기다리면서 긍정적인 호기심과 자극을 주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학습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에 주인이 된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래서 신이 납니다. 학생들에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최적의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 아닌가요?

사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학생들 모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만 어느 순간 느끼게 됩니다. ‘재미있고, 좋은데 이걸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그걸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가 할 일입니다. 좋지만 잘하고 싶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잘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요.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많은 허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잘할 수 있도록, 허들을 넘을 수 있도록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이 거꾸로캠퍼스의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만으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갈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승진과 수업의 기로에 섰을 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요. 저는 역시 학생들과 수업할 때 즐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책을 안 가지고 오고, 아침부터 잠을 자거나 몰래 화장을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집중은 순간일 뿐이었죠. 그런데 수업 방식을 바꿨더니 학생들이 변화하는 게 보였습니다. 학생이 수업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그 안에서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 지 늘 고민합니다. 강의식 수업을 지양하게 되면서 ‘그럼 어떻게 학습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끊임없이 학생들과 다른 방식으로 수업하는 상상을 했고, 창의성이 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이 변하기 전에 교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배움의 주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교사가 적극성을 가지고 수업 방식을 고민했더니 쏟아져 나오는 결과는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거꾸로캠퍼스의 교사들은 생활 속에서도 계속해서 수업의 소재를 찾습니다. 거리를 걸을 때나 책을 읽을 때, TV를 볼 때도 수업에 반영할 만 한 것들을 계속 떠올리죠. 즐거워할 학생들을 떠올리면서 어서 월요일 아침이 오길 바란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에게 일어나는 이런 변화들이 거꾸로캠퍼스에서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대표님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무엇인가요?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형식의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저는 학교가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승진체계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체계가 깨지지 않으면 학교는 절대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직의 리더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어떻게 다져야 효율적인 조직이 될 수 있을 지 생각합니다. 단순히 민주적 의사소통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작은 리더들을 만들었습니다. 업무에 따라 각기 다른 리더를 정해 동료들을 설득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죠. 자기 일에 주도권이 생기고, 마무리될 때까지 과정을 매니징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지가 요즘 저의 화두입니다.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경험하는 기회도 더 많아졌습니다. 운영자가 되니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일이 많아졌죠. 강의와 발표는 꽤 달라서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는 중입니다. 한 번에 늘리면 숨이 막힐 수 있지만 조금씩 늘려가는 경험은 저에게도 또 다른 학습이 됩니다. 평생 학습이라는 말은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죠. 교육은 이래야 한다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제가 배우고 있는 과정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보다 운영자의 입장이 됐습니다. 학부모, 학생, 동료들에게 대표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 저는 함께 고민하고, 일단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2020년의 첫 모듈은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들 모두 가장 고민이 깊은 상황이었습니다. 벌써 몇 개월 간 전세계는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특수한 비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거꾸로캠퍼스의 3월 개강도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죠. 수업 방식이 일반 학교와 달리 밀도 높은 협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 교육과정을 온라인화 했을 때 놓칠 수 있는 부분이나 처음 시도하는 온라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에 대한 우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꾸로캠퍼스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득했습니다. 우리처럼 학생과 소통하고, 스스로 협력하게 만드는 수업이라면 학생들도 얼마든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다시 한 번 거꾸로캠퍼스답게 시도해보자고 말했습니다. 학생들과는 정규 교육과정이 시작하기 전 2주 동안 코칭 교사를 매칭해서 온라인 상으로도 충분히 라포를 형성할 수 있게끔 했고, 교육과정 중반에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은 없는지에 대한 설문도 진행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학생들과 긴밀하게 호흡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학부모님들께서도 거꾸로캠퍼스가 어떻게 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체감하셨던 것 같습니다.

 


거꾸로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의 연령은 14~19세입니다. 대표님은 어떤 학생,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가족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착실한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제 기대와 관심은 무엇인지를 생각도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의존적이면서 수동적이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는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착실하고 안정된 삶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학창 시절의 저는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었던 것을 시도해볼 기회 조차 없었던 거죠. 나이가 들수록 ‘이런 고민을 조금이라도 일찍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교육은 부모님, 교사가 주는 가치를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있는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캠퍼스는 어른들이 정한 삶의 순서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순서를 정할 수 있게, 스스로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거꾸로캠퍼스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드는 것이 눈 앞의 목표입니다. 학생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한번 해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운영할 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르게 교육은 변화하고 진화해야할테니까요.


인터뷰   류창희

편집   류창희, 한성은

사진   주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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